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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사설] 대전환기의 한인 사회, 재도약의 길 찾자

미주 한인사회가 큰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1세 중심에서 차세대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점차 새로운 얼굴들이 커뮤니티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차세대의 활동 반경은 넓습니다. 이미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오랜 이민사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1세들의 역할은 컸습니다. 맨주먹으로 토대를 닦고 피와 땀과 열정으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그 덕에 이제 한인사회는 주목받는 커뮤니티 반열에 올랐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한인사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1세들의 은퇴가 늘고, 신규 이민은 감소하면서 한인사회의 인구 지형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해법은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합니다.   1세들의 빈자리는 차세대가 채우는 것이 순리입니다.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자연스러운 ‘역할 이전’이 가능합니다. 거기에 한인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차세대로의 중심 이동이 단순히 세대의 변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인사회가 재도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차세대를 한인사회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한인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환기의 한인사회와 동행하기 위해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는 미주중앙일보는 이제 100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사업과 행사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온라인 영문 뉴스도 대폭 확대합니다. 한인 차세대를 커뮤니티로 이끌고, 우리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자임하겠습니다. 그것이 한인 언론의 존재 이유라고 믿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한인사회의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또 한 해를 맞았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큽니다. 다행히 경제상황도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올해 치러지는 한국 총선과 미국 대통령 선거는 한인사회의 역량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인들에게는 ‘극복의 지혜’라는 DNA가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려도 헤쳐나갈 수 있는 저력입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한인사회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신년 사설 대전환기 재도약 미주 한인사회 한인 사회 한인 차세대

2024-01-01

[알림] 한인경제 설문 당첨자 발표

창간 49주년을 맞은 미주 중앙일보가 최대 한인은행인 뱅크오브호프와 함께 진행한 ‘전국 한인 경제생활 조사’가 성황리에 마무리됐습니다.     4주 동안 진행된 이번 조사는 전국적으로 5000여명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뤘습니다.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아진 내용들은 미주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소중한 자료로 이용될 것입니다.   당첨자는 디지털 추첨 방식을 통해 131명을 선정했습니다. 대상 1명에게는 ‘바디프렌드’의 최고급 마사지체어를, 2등 1명에게는 에어프레미아 한국 왕복 항공권 1장, 3등 1명에게는 코웨이 럭셔리 공기청정기, 4등 3명에게는 VISA 500달러 기프트카드, 4등 5명에게는 ‘경동나비엔’의 카본매트, 5등 20명에게는 아마존 100달러 기프트카드가 증정됩니다. 이밖에도 100명에게 스타벅스 기프트카드가 전달됩니다. 당첨된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당첨된 분들은 설문조사에 등록한 이메일로 개별 연락을 드렸으며, 아래와 같이 당첨자 리스트를 공지합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이메일(promo.koreadaily@gmail.com)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당첨자 : 이름 (전화번호 끝 4자리)]    바디프랜드 안마의자 (1명) 서용X 님 (8983)   에어프레미아 한국 왕복 항공권(1명) 조조X 님 (1567)   코웨이 공기청정기(1명) 이인X 님 (2551)   비자 $500 기프트카드(3명) 배경X 님 (5020),  전광X 님 (3179),  김일X 님 (5801)   경동 나비엔 카본매트(5명) 노제X 님 (9227),  오정X 님 (8260),  안정X 님 (0566),  오도X 님 (1000),  김근X 님 (3262)   아마존 $100 기프트카드(20명) 준X 님 (4016),  류성X 님 (9600),  임성X 님 (6668),  박재X 님 (2255),  채은X 님 (5557) 원광X 님 (2255),  류주X 님 (3427),  김재X 님 (2994),  성지X 님 (0091),  매튜X 님 (4655) 홍용X 님 (4568),  정대X 님 (4367),  신금X 님 (5559),  독고X 님 (7136),  박안X 님 (7752) 크리X 님 (8388),  이현X 님 (4611),  박영X 님 (9388),  우숙X 님 (8026),  김영X 님 (3945)   스타벅스 $20 기프트카드(100명) 박상X 님 (1149),  강정X 님 (0228),  구정X 님 (344 ),  홍경X 님 (0369),  이상X 님 (7271), 김도X 님 (3310),  박규X 님 (4607),  권제X 님 (2747),  이종X 님 (2255),  영X 님 (7899),   홍수X 님 (2747),  이폴X 님 (0001),  정용X 님 (3579),  김명X 님 (1502),  김요X 님 (8087), 남보X 님 (6583),  오데X 님 (0733),  소은X 님 (1004),  김영X 님 (6000),  최민X 님 (9749), 심병X 님 (0001),  이성X 님 (1812),  박제X 님 (5698),  김히X 님 (3512),  우수X 님 (7996), 허스X 님 (2005),  이순X 님 (9156),  김은X 님 (7560),  최한X 님 (8896),  김성X 님 (7711), 서민X 님 (4890),  이경X 님 (4240),  이규X 님 (6176),  이미X 님 (8309),  김케X 님 (5771), 남기X 님 (1962),  박에X 님 (9521),  신은X 님 (6097),  김영X 님 (0365),  강진X 님 (4949), 장명X 님 (1904), 김크X 님 (3385),  김진X 님 (1048),  서사X 님 (5818),  이원X 님 (6976), 송레X 님 (5003),  정저X 님 (6881),  김그X 님 (3293),  원성X 님 (7986),  오영X 님 (0062), 심윤X 님 (1609),  배기X 님 (2800),  한송X 님 (9287),  최명X 님 (4868),  황정X 님 (8048), 민성X 님 (6726),  경환X 님 (8280),  홍로X 님 (0983),  허보X 님 (9120),  이미X 님 (2952), 김봉X 님 (7677),  박테X 님 (2658),  장다X 님 (5085),  조성X 님 (2239),  윤소X 님 (1772), 이상X 님 (4204),  앤디X 님 (6357),  조용X 님 (0142),  조미X 님 (1900),  이경X 님 (6017), 홍순X 님 (1221),  안정X 님 (6788),  해더X 님 (1004),  김동X 님 (6564),  김피X 님 (6600), 김진X 님 (1904),  임향X 님 (1113),  김한X 님 (4052),  안이X 님 (3722),  강정X 님 (3535), 김성X 님 (2050),  모션X 님 (9709),  이로X 님 (8220),  오경X 님 (6489),  로동X 님 (6759), 김보X 님 (6814),  윤수X 님 (1004),  이이X 님 (2078),  박찬X 님 (4505),  이해X 님 (8923), 배영X 님 (1159),  정문X 님 (0255),  김연X 님 (0149),  송소X 님 (2606),  정선X 님 (5564), 문지X 님 (0735),  김호X 님 (7466),  이진X 님 (0691),  염동X 님 (2335),  박민X 님 (3197)알림 한인경제 당첨자 한인경제 설문 스타벅스 기프트카드 미주 한인사회

2023-11-14

[중앙시론] 동포청, 한인 이민사 교육에도 관심을

인천광역시 해외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한미동맹 및 인천상륙작전 73주년 행사에 초대되어 인천광역시를 방문하고 왔다. 인천광역시는 이번 행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특히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전쟁의 전환점이었으며 대한민국 발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역사”로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광역시를 방문하면서 최근 송도에 설립된 재외동포청(동포청)을 방문했다. 이기철 초대 청장을 만나 재외동포청 출범 100일이 지나며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듣는 기회도 가졌다.   재외동포청의 기본 미션은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공동발전을 통해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과 인류의 공동번영에 기여한다’로 되어 있다. 특히 재외동포청은 과거 재외동포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을 천명했다.     이 청장은 과거 재외동포재단이 단순히 정부 정책을 추진했던 것과 달리 동포청은 재외동포와 호혜적인 동반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책 수립과 이행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동포정책을 일원화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그동안 국내 거주 재외동포는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앞으로는 정책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청장은 여러 부처로 나뉘었던 민원서비스를 통합민원서비스로 통합해 재외 한인들의 편의도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 해외 거주 재외동포들도 동일한 수준의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특히 동포청은 한글학교 지원 강화 정책으로 운영비를 대폭 증액하고 교사연수 지원을 통해 한글학교 교사 역량 강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주 지역 한글학교와 한국어 강좌는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필자는 이제 방법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다. 수강생들에게 미주 한인사회 역사와 문화도 함께 가르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들에게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고, 타인종 학생들은 한인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포청은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공동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다만 차세대 동포에게 한국 발전상을 교육해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정체성을 함양시킨다는 계획이다.     차세대들이 모국의 발전상에 대해 알면 분명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주 한인’이라는 의식이 전제되어야 모국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도 생긴다. 따라서 미주 한인사와 모국의 발전상을 동시에 교육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천광역시가 운영하는 재외동포 웰컴센터도 동포청과 같은 빌딩에 입주해 재외동포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동포청과 인천광역시가 잘 협조해 성공적인 재외동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길 바란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다소 불쾌한 경험을 했다. 별로 크지 않은 캐리온 가방을 들고 송도에서 서울 강남으로 가는 버스에  타려고 하자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이런 가방 들고 타면 안 돼요”라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버스 어디에도 캐리온 가방 휴대를 금하는 문구는 없었다. 그 운전기사는 “이번은 봐 주지만 다음부터는 안 된다”며 선심 쓰듯 말했다.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진 듯 망신스러웠다. 모처럼의 한국 방문이라 필자가 모르고 한 실수일 수 있지만 운전기사의 반응은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억울함도 들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한인 가운데는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재외동포 민권 서비스 시스템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동포청 이민사 재외동포청 출범 과거 재외동포재단과 미주 한인사회

2023-10-09

소니아 석 미주총연 초대회장, ‘한글 간판 달기 주도’…타운 초석 다진 여장부

한인 사회에서 소니아 석(1917~1997) 여사는 ‘애국 할머니’로 통했다. 중앙일보 본국지 1972년 10월4일자 기사에서 찾은 석 여사는 그렇게 한마디로 표현돼 있다.   자서전 '맨발의 소니아 석'에는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석 여사가 캐딜락을 처음 산 건 1964년이었다. “나는 DMV에 신청한 ‘KOREAN’ 번호판을 캐딜락에 달고 다녔다. 항상 한국을 소개하고 싶었다. 뒷창문에는 태극기도 붙였다.”   석 여사는 16살 때 첫 운전대를 잡았던 인물이다. 고향인 평안남도에서 최초의 여성 운전사였다. 남자들을 제치고 운전대를 잡을 정도니 강단 있던 여성이다.   미국에 온 건 1948년이다. 30대 초반이었다. 집안을 살리기 위해 장사를 하느라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선택한 게 유학이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끈기로 버텼다. 노스캐롤라이나 장로교 대학원(1949년), 몬터레이 시립대학(1952년), 샌프란시스코 주립대(1955년) 등에서 국제무역 등을 공부하며 미국 생활에 정착했다.   석 여사는 유학 도중 한국 전쟁을 겪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피란민들의 울부짖는 모습이 연일 보도됐다”며 “그때부터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배웠고 오늘까지 계속 기도한다”고 적었다.   이는 석 여사가 고국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를 위해 많은 것을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1962년 부동산 업계로 뛰어 들었다. 한인 최초의 브로커 자격증과 감정 평가사 자격을 취득했다. 큰 돈을 만지기 시작했다.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자서전에는 “가주한국외환은행 지점, 한인회관, 대한항공 등을 위해서는 좋은 조건으로 건물이나 땅을 사주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렇게 번 돈을 한인 사회에 다양한 방법으로 환원했다.     LA의 한인 인구가 3000명가량 될 때다. 석 여사는 한인센터 이사로 한인 사회를 위해 첫 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한인타운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LA지역 올림픽 길에서 미국인이 운영하는 업소들을 돌며 한글 간판을 붙이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미국인 업주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석 여사는 그때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호통을 쳤다. 그러나 나는 이게 너희 장사를 잘해주기 위해 하는 것이니 기다려 보라고 설득했다. (중략) 미국 간판을 우리말로 바꾸어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올림픽길이 한인타운의 면모를 더해갔다.”   이후 미주총연합회 초대 회장, LA한인회장(1971년) 등에 선임됐다. 이듬해 전국체전에 참여할 미주선수단의 초대 단장을 맡아 고국 땅을 밟기도 했다. 그는 미국 정계와도 가까웠다. 닉슨 대통령 행정부 시절 공화당 가주유산위원회 부회장(1972년), LA시 커미셔너(1976년), 공화당 가주지구당 부위원장(1981년) 등을 맡아 한인 사회의 정치력을 다져갔다.   세계적인 테마파크였던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내 ‘스몰 월드’에 최초로 한국 인형을 넣은 것도 석 여사가 한 일이다. 그가 일평생 한국과 한인 사회를 위해 한 일을 제한된 지면에 모두 담기엔 부족할 정도다. 그만큼 많은 씨앗을 뿌렸다. LA에서 한인으로서는 지난 1971년 처음으로 치과를 개업한 장기열 박사가 석 여사의 장남이다.   석 여사는 8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삶의 행적에는 ‘애국’ 한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초대회장 소니아 올림픽길이 한인타운 미주 한인사회 한글 간판

2023-09-21

"한인 풀뿌리 운동이 소녀상 건립 초석"…소녀상 건립 10주년 CARE 김현정 대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글렌데일 지역 ‘평화의 소녀상’이 오는 30일 건립 10주년을 맞는다.   소녀상의 초연한 자태 이면에는 굴곡의 시간이 담겨있다.     당시 소녀상을 세우는 데 일조했던 김현정 대표(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를 지난 24일 만났다.   김 대표는 “소녀상 건립 운동은 미주 한인 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가져왔다”며 “특히 소녀상 건립의 발단이 됐던 연방 하원에서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는 처음으로 한인들이 힘을 모아 주류 정치권에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소녀상 건립 배경은.   “2000년부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그때만 해도 한인 사회의 정치력은 미미했다. 풀뿌리 운동의 개념도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07년 소녀상 건립의 초석이 됐던 위안부 결의안 통과는 한인만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냈던 사건이었다. 미주 한인사회 풀뿌리 운동 역사의 전과 후는 그렇게 나뉠 수 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한인들이 본격적으로 풀뿌리 운동을 통해 정치력을 다지게 됐다. 가주한미포럼, 시민참여센터, 미주한인풀뿌리컨퍼런스 등의 단체도 그때부터 생겨났다. 이러한 움직임이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위안부 기림비, 소녀상 건립 등으로 이어졌다.”   -왜 글렌데일 이었나.   “소녀상 건립을 요청하려고 각 시 정부와 기관에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보낸 곳만 100곳이 넘었다. 그때 캘스테이트LA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답변이 왔다. 그중 글렌데일 시정부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아르메니안 역사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공감이었나.   “글렌데일 지역에는 아르메니안이 많이 산다. 과거 집단학살 사건 때문에 터키에 대한 반감이 있다. 터키 정부가 이를 계속 부인하고 있지 않나. 일본의 위안부 사건을 비롯한 역사 부정 발언 등이 아르메니안이 가진 역사적 아픔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소녀상 건립 반대 운동이 심했다.   “당시 건립 소식이 알려지자 공청회에 일본계 주민이 100명 넘게 몰렸다. 복도까지 가득 찼다. 그만큼 반대가 극심했다. 당시 반대 발언을 듣고 있던 프랭크 퀸테로 시장의 일침이 기억에 남는다. 위안부 사건이 거짓이라 외치는 일본계 주민들을 향해 ‘당신들은 이런 역사를 가르치지도, 배워본 적도 없으니 모르는 것’이라고 하셨다.”   -철거 소송도 제기됐는데.   “건립 후 3년간 이어진 싸움이었다. USC 교수(고 메라 코이치)가 주도했었다. 대형 로펌을 내세웠다. 승소가 목적이라기보다 우리를 압박하고 소녀상을 세우려는 타 기관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의도라고 봤다. 결국 연방 대법원까지 갔다. 다행히 연방대법원이 일본 측의 소송을 각하하면서 끝이 났다.”   -위안부 역사를 알리기 위한 방안은.   “할머니들이 이제 9명 남았다. 역사적 자료를 남겨두는 게 중요했다, 한국 서강대학교 등과 협업해서 인공지능을 통해 대화형 비디오를 만들었다. 할머니들과 긴 시간 인터뷰를 했다. 질문하면 인공지능이 인터뷰 내용을 골라 답변하는 방식이다. 정확도가 85%다. 내년까지 답변의 정확도를 95%로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쓰일 수 있게 영어 번역 작업도 하고 있다.”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UCLA가 위안부 역사 자료 보관을 위해 웹사이트 자료실을 만들고 있다. 올해 말에 완성된다. 내년 2월부터 LA 사회정의 박물관에서 위안부 역사 자료 전시회가 열린다. 위안부 역사 장학금도 시행 중이다. 한 한인 독지가가 UCLA를 비롯한 샌프란시스코대학, 코네티컷대학, 캘스테이트LA,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 베사 칼리지 등에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 학교들은 교수 또는 학생에게 매년 1만 달러씩 위안부 역사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소녀상 건립 10주년 행사는   오는 29일 오후 4시 글렌데일 지역 주민 센터인 ARC 건물 앞(201 E. Colorado St)에서 열린다. 글렌데일 소녀상은 지난 2013년 7월 30일에 세워졌다. 서부 지역에서는 최초였다. 전국에서 위안부 관련 상징물(기림비)이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은 뉴저지주 펠리세이드시 도서관 부지다. 지난 2010년이었다. 글렌데일에서도 원래는 비석 형태로 세워질 뻔했다. 하지만, 글렌데일 시의회가 역사적 의미를 좀 더 체감할 수 있도록 소녀상 건립을 먼저 제안했다. 그만큼 한인과 아르메니아계 사이의 역사적 유대감은 깊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위안부 소녀상 소녀상 건립 미주 한인사회 당시 소녀상

2023-07-25

[삶과 추억] 평생 한인사회 봉사에 전념, 이민휘 회장 별세

미주 한인사회 원로 이민휘(사진) 회장이 지난 24일 오전 1시 10분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 이민휘 회장은 경기고와 동국대를 졸업하고 1956년 미국으로 유학, 샌호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민휘 회장은 샌프란시스코와 LA에서 한인회장을 시작으로 한인사회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이 되면서 이민사회 단체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 한국 라디오 및 TV 방송 회장, 1974년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제9대 회장 재선, LA 한인회 회장, 재미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5년 미주한인회총연 제16대 회장에 이어 2006년 미주 동포후원재단 초대 이사장 등 평생을 미주 동포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교민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미주 동포후원재단을 설립해서 차세대 지도자 육성 및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힘썼다.     미주 한인사회 공헌으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 체육훈장 거상장,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체육훈장 거상장, 호국영웅기장, 5.16 민족상 등을 수훈한 바 있다.   2020년 출판한 일대기 ‘외길’에서 그는 “한인사회는 내 인생의 애환이 서린 내 몸 같은 것”이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이민휘 회장의 아버지는 독립지사인 운호 이규갑 선생이다. 그리고 빈장(장인)은 애국지사인 연당 이갑성(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 선생이다.     유족으로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제작자로 활동하는 필립 리, 사이먼 리 두 아들이 있다. 유족 측은 장례일정이 정해지는 대로 추후 공지할 예정이다. 이은영 기자삶과 추억 한인사회 이민휘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 이민휘 회장 미주 한인사회

2023-06-25

[중앙칼럼] 한인 2세들 정체성 교육은 가족사 부터

미주 한인사회에 2세와 3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연방센서스국이 지난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 2세들의 사회·경제적 수준은 같은 또래의 백인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한인 2세들의 가계소득은 총 143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들이 납부한 세금 규모만도 46억 달러에 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2세 인구는 45만3989명이다. 인구 숫자로는 전체 아시안 2세 인구 670만 명의 6.8%에 그치지만 한인 2세의 가계소득 규모는 전체 아시안 가계소득액의 8.3%, 납세 규모도 전체 아시안 납세액의 8.6%를 차지했다.     한인 2세의 중간 연 소득은 8만8100달러로, 전체 아시안 인구의 중간 연 소득 8만5800달러보다 2300달러가 많았다.   한인 2세들의 구매력(Buying Power)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 2세의 구매력은 총 96억 달러로, 304억 달러를 기록한 중국계, 179억 달러의 필리핀계, 그리고 일본계(161억 달러), 인도계(157억 달러)에 이어 아시아계 가운데 5번째를 기록했다. 이 같은 규모는 아시안 전체 구매력인 1178억 달러의 8.1%에 해당한다.   이처럼 한인 2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한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낮은 것으로 나타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8일 퓨리서치가 ‘아태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공개한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 성인 4명 중 1명(25%)은 ‘코리안’ 또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한인’ 정체성을 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본인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한인은 10명 중 1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가 한인에게서만 나온 건 물론 아니다. 보고서는 전체 아시안 응답자의 20%가 본인의 인종적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정체성을 숨기는 이유로 비아시아계가 정체성을 질문할 경우 상대방이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차별적인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의 비 응답률이 25%로 다른 아시아계보다 높다는 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드러난 건 또 있다. 바로 아시아계 2세들이 미국 내 아시안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인은 24%만이 미국 내 아시안 역사에 대해 잘 안다고 답했으며 49%는 ‘약간 안다’, 25%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LA시의회는 지난 12일 5월 아태 문화유산의 달을 알리는 선포식을 가졌다. 올해는 한인 존 이 시의원(12지구)과 인도계 니디아 라만 시의원(4지구)이 함께 선포식을 진행했다. 3층 홀에 마련된 리셉션장에는 다양한 아시안 음식들이 마련됐고 민속 공연도 진행됐다. ‘아태문화유산의 달’에 아시안 커뮤니티에서 진행될 각종 행사를 알리는 책자도 두툼하게 발간됐다.   LA시 발전에 앞장선 공로자로 돈 유 LA시 관광국장과 카니 정 조 남가주아태정의진흥협회 회장이 수상자로 선정돼 상을 받기도 했다.     매년 5월은 ‘아태문화유산의 달’이기에  특별할 것이 없을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곳곳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아시안 문화 행사는 멀리 느껴지던 문화와 커뮤니티를 가깝게 만든다.     한인 후손들의 정체성이 단단해야 한인 커뮤니티도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다. 내 가족의 이민사가 바로 자녀의 정체성을 단단히 세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아태문화유산의 달’을 가족 문화와 유산을 후손과 나누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자녀의 정체성도 좀 더 단단해질 것 같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정체성 가족사 미주 한인사회 인종적 정체성 한인 성인

2023-05-14

[하루를 열며] 중앙시론 한인사회의 회계 투명성 높이자

올해도 국제정세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다. 반상의 기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과연 곧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시각차는 팽팽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절대로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 있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서 최고의 선진국이 된 사례가 없고, 중국의 사회·경제 구조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한국에서도 ‘투명성’은 정치를 넘어 경제·기업·사회 전반에서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이 된 지 오래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힘이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모처럼 친지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니 자연히 정치로 화제가 옮겨갔다. 어떻게 법조인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내우외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대한민국호의 항로를 잡아야 할까?  이구동성으로 부정부패 고리를 끊고,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윤 대통령은 재임 동안 ‘법치주의’의 뿌리만 내려놓아도 성공한 정권이라는 것이 주류였다. 또한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특히 기업과 정부, 사회단체 등 각 조직에서 회계 투명성 확보를 들었다. 선진국의 길목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주 한인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주 한인사회는 올해로 이민 120주년을 맞는다. 한인 1세대들은 1903년 하와이에 도착한 이래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개척정신 하나만으로 당당히 주류사회에 도전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제는 주류정치권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한인사회는 급성장했다. 그럼에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많은 한인 단체들은 아직도 구멍가게 운영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단체에서 회계 불투명으로 인한 부작용이 속속 노출되고 있다.   실례로 애틀랜타의 경우 지난 34대 한인회는 회계 불투명으로 임기 내내 지탄을 받았으며, 급기야 당시 회장은 전직한인회장모임에서 퇴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를 시정하고자 나선 35대 한인회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말 총회에서의 회계 감사 발표의 내용과 절차는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정상 회계감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비단 여기뿐이랴. 상당수의 한인조직도 도진개진이다. 지난해 지역 한인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비영리단체 팬아시안커뮤니티센터(CPACS)의 분규사건도 주원인은 회계 불투명에서 초래됐다.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봉사단체들도 아직 회계상황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역 한인들이 이웃을 섬기라고 쌈짓돈을 내어 지원한 대가이다.   한인 사회의 중심축인 종교단체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각종 분규사태는 알고 보면 대부분 회계의 불투명에서 시작됐다. 물론 일부에서는 회계감사를 강화하는 등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또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인 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회계 투명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다소의 비용과 노력이 든다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계묘년 검은 토끼해를 맞아 큰 단체이든 작은 모임이든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보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하루를 열며 중앙시론 한인사회 미주 한인사회 회계 투명성 정상 회계감사

2023-01-22

[중앙시론] 한인사회의 회계 투명성 높이자

올해도 국제정세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다. 반상의 기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과연 곧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시각차는 팽팽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절대로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 있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서 최고의 선진국이 된 사례가 없고, 중국의 사회·경제 구조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한국에서도 ‘투명성’은 정치를 넘어 경제·기업·사회 전반에서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이 된 지 오래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힘이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모처럼 친지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니 자연히 정치로 화제가 옮겨갔다. 어떻게 법조인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내우외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대한민국호의 항로를 잡아야 할까?  이구동성으로 부정부패 고리를 끊고,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윤 대통령은 재임 동안 ‘법치주의’의 뿌리만 내려놓아도 성공한 정권이라는 것이 주류였다. 또한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특히 기업과 정부, 사회단체 등 각 조직에서 회계 투명성 확보를 들었다. 선진국의 길목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주 한인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주 한인사회는 올해로 이민 120주년을 맞는다. 한인 1세대들은 1903년 하와이에 도착한 이래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개척정신 하나만으로 당당히 주류사회에 도전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제는 주류정치권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한인사회는 급성장했다. 그럼에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많은 한인 단체들은 아직도 구멍가게 운영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단체에서 회계 불투명으로 인한 부작용이 속속 노출되고 있다.   실례로 애틀랜타의 경우 지난 34대 한인회는 회계 불투명으로 임기 내내 지탄을 받았으며, 급기야 당시 회장은 전직한인회장모임에서 퇴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를 시정하고자 나선 35대 한인회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말 총회에서의 회계 감사 발표의 내용과 절차는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정상 회계감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비단 여기뿐이랴. 상당수의 한인조직도 도진개진이다. 지난해 지역 한인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비영리단체 팬아시안커뮤니티센터(CPACS)의 분규사건도 주원인은 회계 불투명에서 초래됐다.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봉사단체들도 아직 회계상황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역 한인들이 이웃을 섬기라고 쌈짓돈을 내어 지원한 대가이다.   한인 사회의 중심축인 종교단체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각종 분규사태는 알고 보면 대부분 회계의 불투명에서 시작됐다. 물론 일부에서는 회계감사를 강화하는 등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또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인 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회계 투명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다소의 비용과 노력이 든다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계묘년 검은 토끼해를 맞아 큰 단체이든 작은 모임이든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보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중앙시론 한인사회 투명성 미주 한인사회 회계 투명성 정상 회계감사

2023-01-11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 기념 전시회 열린다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기념해 한인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회가 갤러리 웨스턴(관장 이정희)에서 열린다.     미주 한인 재단은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지난 이민사 120년을 회상하고 희망찬 미래를 위해 미주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인정받는 작가들을 초청한 아트 전시회를 기획했다.     갤러리 웨스턴 이정희 관장은 “개관 15주년을 맞아 미주 한인 재단과의 협업이 더욱 뜻깊은 의미를 갖게 됐다”며 “지난 15년 동안 각국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한인사회에 문화적 경험을 제공해왔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는 회화, 판화, 조각, 사진, 소품 등 다양한 장르의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 관장은 “전시회 수익을 모두 미주한인재단에게 기부하고 작가들 역시 10%를 재단에 기부해 미주 한인사회의 발전에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 작가는 강영일, 김경원, 김구자, 김상동, 김성일, 김수임, 케티김, 김원실, 니나정, 백혜란, 신정연, 에스터심, 옥가한, 이정미, 정은실, 조분연, 쥬디신, 최성호, 황영아, 홍한나 등 미주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중견 한인작가 총 20명이다.     오프닝 리셉션은 오는 13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전시 기간은 13일부터 20일까지다.     ▶주소: 210 N. Western Ave. #201. LA   ▶문의: (323)962-0008 이은영 기자전시회 한인 미주 한인사회 모두 미주한인재단 전시회 수익

2023-01-08

독립·계몽 운동에 헌신…정계 진출로 정치력 신장

120년이 넘은 한인 이민사는 도전과 인내, 굽히지 않은 신념과 세대를 거듭한 노력의 역사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한국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한 사탕수수밭 이민선조 7400여명부터, 1960~70년대 제2 이민물결로 LA와 전국 각지에 터를 잡은 현시대 이민 1세대 모두 오늘날 196만(2021 연방센서스 아메리칸커뮤니티서베이, 2022 한국 외교부는 255만 추산) 미주 한인사회를 가꾼 주인공들이다.     특히 소수계 커뮤니티에서 당당한 미국사회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노력은 1세기 동안 느리지만 단단하게 결실을 맺고 있다. 1950년 이전 이민선조와 자녀 세대는 한인이란 정체성과 조국사랑을 바탕으로 미국사회 일원을 강조했다. 현시대 한인 1세대와 자녀는 이민선조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아 정치력 신장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인 이민 120주년, 정치적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앞장선 이들을 알아봤다.   ▶서재필(필립 제이슨 서, 1864~1951)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자주, 자강을 주창했지만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천하에 그쳤다. 이후 서재필은 1885년 4월 미국으로 와 학업에 열중한다. 1889년부터 1892년 컬럼비아대 의학부를 졸업, 1892년 3월 한국인 최초 의사가 된다.     1895년 12월 조선 정부 초청으로 귀국 1989년 4월 7일 최초 민간신문이자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며 조선의 부국강병을 강조하지만, 민주주의 사상 전파로 추방된다.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당시 유학생과 한인들을 모아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개최하며 식민지가 된 조국의 고통을 알리고 일본제국주의를 규탄한다.     서재필은 1922년부터 광복이 될 때까지 ‘동아일보·조선일보, 미국 신한민보’에 끊임없이 글을 기고해 국내외 한인 단합, 실력양성을 통한 독립쟁취를 강조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안창호(1878~1938)   1900년 미국에 도착한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공립협회를 설립하고 이후 리버사이드, LA, 다뉴바와 리들리 지역을 돌며 한인사회 의식계몽과 생활향상에 앞장섰다. 1907년~1923년 사이 귀국해 민족 계몽운동에 힘썼고, 일제에 쫓기다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 기초를 다졌다.     1924년 미국에 다시 온 안창호는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조직을 강화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혐의로 체포, 1937년 6월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 등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3월 경성대학 부속병원에서 간경화증으로 사망했다.   도산은 가주에서 한인사회 권익신장을 독려하고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공동체 화합과 단결, 정치력 신장을 위한 기틀을 다졌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이승만(1875~1965)   이승만은 1897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운동에 참여했다가 정치범으로 투옥된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와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귀국 후 일제강점기 105인 사건으로 1913년 하와이로 다시 왔다. 하와이에서 한인기독학원을 운영하며 민족 교육과 선교 활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 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워싱턴DC에 구미위원부를 설립하고 미국 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대한독립 필요성을 알렸다.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 대한민국 독립과 임시정부 승인을 위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광복 후 귀국해 미군정 승인 아래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김형순(1886~1977)·김호(1884~1968)   김형순(왼쪽사진)은 1903년 1월 13일 한인 첫 이민선의 통역 자격으로 미국에 왔다. 이후 본토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김호는 1912년 독립운동에 헌신하고자 망명, 1914년 미국에 와 대한인국민회 중심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1921년 가주 중부 리들리시에서 김형제(Kim Brothers)상회를 설립해 과수와 묘목 사업으로 성공했다. 미주 한인 최초 100만 장자로 불렸고 축적한 부를 조국의 독립운동과 캘리포니아 등 미주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지원했다. 연방농무부는 넥타린(Nectarine) 개발 보급을 인정해 김형순을 표창했다. 김호는1942년 LA시청에서 대한민국 독립 열망을 선포한 ’현기식‘에서 자주독립 열망을 세계에 알렸다. 2006년 LA한인타운에는 김호의 독립운동 및 사회공헌 기리기 위해 한인 최초로 찰스 호 김 초등학교(Charles H. Kim Elementary School)가 설립됐다. 김형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호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한인 이민선조의 자녀는 하와이와 본토 땅에서 태어나 한인 2세대로서 정체성을 확고히했다. 동시에 모국의 광복, 6·25 한국전쟁을 접하고 힘을 보탰다. 미국 사회에서는 공동체 발전을 위해 당당한 일원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김영옥(1919~2005)   김영옥은 1919년 한인 이민선조인 하와이 사탕수수밭 한인 노동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에 입대, 혁혁한 공을 세워 훈장을 17개나 받았다. 참전 당시 부상을 당했지만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모국을 위해 재입대, 아시아계 중 최초로 연대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전쟁 참전 후 전우들과 500여명의 고아를 돌본 일화도 유명하다.  김영옥 대령은 전역 후 LA 등 남가주 한인사회 발전에 헌신했다. 그는 가정상담소, 한미연합회, 이웃케어클리닉(전신 한인건강정보센터), 아태여성연합회 등을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문대양(1940~2022)   1993년 하와이주 대법원장에 한인 3세인 문대양(당시 53세.영어명 로널드 문)씨가 지명됐다. 한인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주 대법원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문대양 대법원장은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첫 이민 온 문정헌(할아버지)씨와 이만기(외할아버지)씨의 손자다. 하와이 첫 이민자의 손자가 주 대법원장이 된 사실 자체가 한인 이민사에 획을 그은 역사였다. 문대양 대법관은 생전 “할아버지로부터 내려 온 한국의 가족, 노동 등에 대한 가치를 배웠기에 한인 중 최초로 미국의 주 대법원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며 깊은 동포애를 나타냈다. 그는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년을 맞아 다이빙 영웅 새미 리, 야구선수 박찬호 등과 함께 ‘미주 이민 100년의 영웅 7인’에 뽑히기도 했다.   ▶송호연(1919~2004)   하와이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송호연(영어명 알프레드 송)은 1962년 아시아계 최초로 가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하원의원으로 4년 동안 활동한 알프레드 송은 1966년에는 28지구 주 상원의원에 당선돼 4선의 경력 등 총 16년 동안 의정활동을 했다. 알프레드 송은 주 입법부 역사에 ‘경전’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증거법(California Evidence Code)’을 비롯해 소비자 보호와 소수계 권리 향상을 위한 법 등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200여 개의 법을 제정했다. 2013년 LA카운티 메트로폴리탄 교통국(MTA) 이사회는 한인 이민사 110년 만에 처음으로 LA한인타운 중심부의 윌셔·웨스턴 전철역을 한인 이름을 딴 ‘윌셔-웨스턴 알프레드 호윤 송’ 역으로 변경했다.   ▶김창준(1939~)   남가주 다이아몬드바시 의원과 시장을 역임한 김창준은 1992년 연방 하원의원(가주 41지구)에 당선됐다. 이후 1998년까지 3선을 지냈다. 한국 출생인 김 의원은 이민 후 한인 최초로 연방 하원에 진출한 역사를 썼다.   2015년 UCLA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소가 발간한 ‘전국 아시아태평양계 정치인 및 공직자 연감’에 따르면 당시 지방 및 연방 정부 주요 선출직 및 임명직에 170명 이상(연방 정부기관 및 단체 26명, 연방 및 주정부 판사 27명, 주 의회 의원 및 지방정부 선출직 공직자 25명 이상)이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선출직 공직자는 데이비드 류 LA시의원, 미셸 박 스틸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영 김 가주 하원의원, 제인 김 샌프란시스코 수퍼바이저, 최석호 어바인 시장, 론 김 뉴욕주 하원의원, 마크 장 메밀랜드 주 하원의원, 하와이주 도나 마카도 김 상원의원이었다.   2022년 현재 한인 선출직 정치인과 공직자는 지방 및 연방 정부에서 더 활약하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8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는 앤디 김 하원의원(민주·뉴저지 3지구, 재선), 메릴린 스트릭랜드 하원의원(민주·워싱턴주 10지구, 초선), 미셸 박 스틸 하원의원(공화·가주 45지구, 초선), 영 김 하원의원(공화·가주 40지구, 초선)이 모두 연임에 성공했다.   참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세계한민족문화대전 -한인역사박물관·LA카운티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신년 8면 정치인 김형재 미주 한인사회 한인 이민사 사탕수수밭 이민선조

2023-01-01

[사설] 윤 대통령의 약속 기대한다

UN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미주 한인사회 지원 강화 의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20일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한인 동포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어 등 차세대 뿌리교육 지원, 미 당국에 한인 권익 향상과 안전에 대한 관심 촉구 등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또 한인사회가 모국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한분 한분이 모국과의 연결고리”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주목된다.      윤 대통령 이런 약속이 꼭 지켜졌으면 한다. 한인사회의 역량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생활하지만 모국에 대한 관심이 많고,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한인사회의 성장은 한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K브랜드로 대변되는 한국 문화의 유입과 한국 기업의 진출이 늘면서 한인사회의 역할 공간도 넓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간담회에서도 “한미 양국 관계가 문화공동체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사회와의 접점 확대는 시의적절한 정책이다.     사실 역대 정부마다 한인사회에 대한 지원 확대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제도 개선의 속도는 기대치에 못 미쳤다. 미래지향적이고 포괄적인 재외동포 정책이 없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정치권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 탓도 있다.     미주 한인사회에 대해 아직도 존재하는 한국 내 일부의 부정적 시각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미주 한인 이미지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 내용이 많은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재외동포청 설치법안 통과가 확실시된다. 한국 정부는 동포청 설치와 함께 한인사회를 보는 시각 교정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사설 대통령 약속 윤석열 대통령 미주 한인사회 재외동포청 설치법안

2022-09-21

[사설] LA한인축제 더 발전하려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했던 LA한인축제가 3년 만에 돌아온다. 올해 축제는 22일부터 4일간 LA한인타운 내 서울국제공원에서 열린다. 이번에도 다양한 먹을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즐길거리들이 마련되는 모양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한국 각 지역 특산품과 음식 부스들이 마련되고, 축제 기간 내내 각종 공연도 펼쳐진다. 한국 전통놀이를 체험할 기회도 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좋은 기회다. 축제 주제 역시 ‘한류의 힘으로 회복과 화합’이다.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주최 측의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우선 코로나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한계는 있겠지만 행사장 내에 최대한의 방역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바가지 가격이나 음식 위생 문제 등으로 관람객이 불쾌해 하지 않도록 사전에 주의를 당부하는 것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만큼 안전사고 예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관람객들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이는 모습이 필요하다. 과도한 음주, 과격한 행동 등으로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인축제에는 타인종들도 많이 참석한다. 한두 사람의 일탈 행위로 인해 한인사회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LA한인축제는 올해가 49회째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역사와 규모 면에서 미주 한인사회 최고의 축제로 자리매김 했다. 따라서 앞으로 100회, 200회까지 지속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에 안주하지 말고 차세대에 문화유산을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끊임없는 보완과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일은 몇몇 사람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인사회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사설 la한인축제 발전 미주 한인사회 축제 기간 한인사회 전체

2022-09-07

[시론] 화합과 협력의 시대를 기대하며

미주 한인사회는 지난 한국의 대선과 지방선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환호와 좌절이 교차했다. 몸은 멀리 있어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선거가 끝나면 으레 지지후보의 당락에 따라 서로간 갈등이 생긴다. 내면의 깊은 갈등이 서로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으로 표출돼, 그동안 쌓아온 친분마저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따지고 보면 미국에 사는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을 일 같은데도 말이다. 여기에는 무언가 분명한 것이 작용하고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확고한 사상과 이념 때문이다. 일반적인 이해충돌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라는 견고한 사상과 이념이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바꾼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특히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말이다. 또한 한국과 미국이 추구하는 보수와 진보개념이 다르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이 추구하는 보수는 현상 유지나 전통의 옹호 또는 점진적 개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보는 사회의 모순을 변화와 개혁을 통해 해결해 나가려는 사고방식이나 사상을 말한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인 이념을 추구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미국의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다원주의에서 극과 극의 양상으로 달라진다. 사상과 이념으로 갈라진 분단국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갈라진 이념으로 남북이 분단됐고 평행선을 달리며 아픔과 상처투성인 6.25전쟁도 경험했다. 수많은 북한의 도발로 아픔과 상처도 겪었다. 근래에 그 양상이 미사일과 핵으로까지 악화되면서 양극화의 절정이 극에 달했다.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 것 같아 위태롭다.     보수와 진보의 사상과 이념 갈등이 언제까지 평행선을 달릴 것인가. 앞으로도 서로 대치하며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모두가 평화통일에는 이의가 없다. 그런데 방법론에 있어 갈등이 양극화 되었다고 본다. 평화통일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 보수와 진보는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보수와 진보가 공통분모를 찾아 서로 의견 접근을 도출해야 한다.     북한의 통일방식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북한이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고 적화통일을 꿈꾸며, 호전적인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긍정적인 변화 여부가 중요한 문제다.     보수와 진보는 우리사회 발전에 모두 필요하다. 먼저 보수는 꼴통이고 진보는 종북이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는 편협한 사고는 양극화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협력과 타협으로 여러 갈등을 해결하려는 사고가 생겨나야 진정한 소통을 이루며 간극을 좁혀나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며 추구하고 있기에 사상과 이념의 갈등에서 지혜롭게 벗어나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급진적 타협보다는 단계적으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간의 현 상황에서 보수가 주장하는 것과 진보가 주장하는 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보수와 진보의 화합은 남북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로 협력하고 상대를 존중할 때 보다 발전적인 상생의 정치도 구현할 수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동포사회도 사상과 이념의 양극화에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모두가 한민족이다. 동포사회가 하나 되어 화합과 협력의 길로 가는 대한민국을 후원해야 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시론 화합 협력 이념 갈등 우리사회 발전 미주 한인사회

2022-06-14

“장학생 도전하세요”

“장학생 선발에 도전해보세요.”   다양한 한인사회 장학금이 한인 젊은이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해피빌리지와 중앙일보가 킴보장학재단의 후원을로 진행하는 미주 한인사회 최대 규모 장학제도인 킴보장학생이 올해도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찾는다.   제35회째를 맞는 2022년 킴보장학생은 시카고를 비롯 미 전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1인당 2000달러씩 모두 216명에게 총 43만2000달러를 지급한다.   대학 입학 예정자(12학년)와 대학생(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포함) 등이 대상인데 한•흑, 한•라티노 커뮤니티 화합을 위해 흑인과 라티노 학생도 선발한다.   신청서 접수는 시카고 중앙일보를 비롯 미주 각 지역 중앙일보 지사를 통해 가능하다. .   소정 양식의 신청서 1통을 비롯 본인 소개 에세이(영문), 성적증명서(원본) 1부, 2021년 부모 세금 보고서 사본 1부, 커뮤니티 봉사 활동 및 수상 내역 리스트, 추천서(교수•교사•사회단체장•봉사기관 단체장), 올해 고교졸업 예정자는 대학합격 통지서(College Admission Letter) 등을 제출하면 된다.     신청서는 킴보장학재단(www.kimbofoundation.org)이나 해피빌리지(www.myhappyvillage.org)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접수 마감은 6월 17일(금)이다. 문의 및 안내=847-228-7200   비영리 장학재단 OTEFE 재단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또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최소 2000달러에서 최대 1만5천달러까지 장학금을 수여한다. 2022년 대학/대학원 재학생 또는 입학 예정자(유학생 포함)가 대상이다. 6월2일까지 신청 가능하다. 문의 및 안내=info@otefe.org.   서울대 하트랜드 지역 동창회는 이 지역(AR, IA, KS, MO, NE, OK)에 거주하는 한인 대학생 및 대학 진학 예정자를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발한다. 6월 30일 신청 마감되며 학교 성적, 과외활동, 추천서(2), 재정 상황과 품행 등을 고려 선발한다. 장학위원회서 정한 지원서 및 제반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문의 및 안내=msoonbae@gmail.com, 전화 913-709-2334.     Kevin Rho 기자장학생 도전 장학생 선발 한인사회 장학금 미주 한인사회

2022-05-09

[중앙 칼럼] 한인 경제의 ‘연어 프로젝트’

한국의 지인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지방 지자체 공무원인 그는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 국제협력, 투자유치 등을 전담해 온 국제통이다. 그런데 지난해 인구청년정책관으로 부서를 옮겼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활기찬 고장을 만들기 위해 젊은 부부의 출산을 장려하고, 청년을 우리 지역으로 유도하고, 귀농도 도와야하는데 도무지 성과가 안 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부동의 꼴찌’다. 전 인구의 45%가 서울·경기에 밀집했는데 당해낼 장사가 누굴까.   이런 모습은 미주 한인사회와도 닮았다. 이미 경고등이 들어온 감소 추세인 이민자와 유학생 통계만 찾아봐도 그렇다.   그러나 반대로 새로운 피가 수혈되면 얼마나 놀라운 발전이 가능한지는 LA의 한 업체가 보여줬다. 40년 가까운 업력을 자랑하는 이 한인 회사의 A 대표는 자녀들 덕분에 회사가 10배 이상 커졌다고 말했다. 경영학 등을 전공한 딸과 아들이 각각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다가 아빠 일 돕겠다고 나선 뒤 성과다. 마케팅과 네트워크의 수준이 높아졌고 하이테크 접목은 물론, 원활한 직원 통솔까지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험한 바다로 나가 성장한다. 거친 파도 속에서 살면서 생존력을 기르고 강한 DNA를 만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 회유성 어종이다. 생물학자들이 집중하는 부분은 비단 연어의 생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강물을 거스르는 과정에서 연어는 상어, 물개, 갈매기, 독수리, 곰 등에 먹히기도 한다. 알을 낳고 죽은 뒤에는 육지 동물들의 먹이가 되고 남은 사체는 강 연안 식물들에게 영양분이 된다. 연어들의 세계는 물론, 생태계 전체에 강력한 경제적 효과를 내는 셈이다.   A 대표의 자녀들처럼 ‘연어 프로젝트’가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한인 경제의 인재 부족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기자 주변에는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B씨는 주재원 신분으로 LA에 살면서 얼마 전 방법을 찾아내 영주권을 진행 중이다. 또 다른 주재원인 C씨는 스폰서 업체를 찾아냈고 본사의 복귀 명령에 맞춰 새로운 인생을 펼칠 예정이다. 둘째 출산을 준비하며 한인 경제의 발전을 바라는 D씨는 대견할 정도다. 서울에서 사는 E씨는 쉰 살 이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오겠다며 릴레이 면접에 매진하고 있다.   LA 시 재무국이 집계하는 신규 비즈니스 등록 현황이란 게 있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며 업주가 신고하는 방식이라 의욕에 찬 사업가들이 적는 사업일지의 첫 장과도 같다. 지난해 시 전체적으로 접수된 신규 업소는 2만8020개로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그러나 한인타운 7개 집코드에 해당하는 곳의 신장개업은 2420개로 4% 감소에서 멈췄다. 팬데믹 악재, 과도한 규제, 높은 물가 등이 걸림돌이었지만 나름 선방했다고 분석한다. 난개발 지적도 있지만 활발한 부동산 개발만 봐도 한인 경제권의 성장 가능성은 높다는 평가다.   경제 상황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인플레이션이 아가리를 떡하니 벌리고 있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한인사회의 경제 리더들은 인구청년정책관과 비슷한 고민까지 떠안고 있다.   A 대표가 밝힌 자녀들의 컴백 이유는 대기업 다녀봤자 힘만 들 뿐 아빠 회사가 더 값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먹지도 쉬지도 않고 강물을 거스르고 산란을 마친 뒤 생을 마감하는 연어는 인간과는 다르다. 일회용 소모품처럼 사람을 다루지 말아야 할 이유다. 드디어 도착한 한인 경제에서 좌절하지 않고 꿈을 이루며 번영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줘야 하는 책임이 무겁다. 류정일 / 경제부 부장중앙 칼럼 프로젝트 한인 한인 경제 연어 프로젝트 미주 한인사회

2022-03-27

[열린 광장] 2세 정체성 교육에 관심 갖자

 미주 한인사회에서 1.5세 및 2세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 젊은 세대가 성인이 되어 점점 더 많이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부터 한인사회는 서서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재외동포 재단 자료에 따르면 한인 2세의 59%가 대학을 졸업했고 25%가 대학원을 마쳤다. 이는 주류인 백인에 비해 10%포인트 이상이 높다고 한다. 또한 미국 출생 다른 아시아계 소수민족보다도 높다. 전체적으로 아시아계 이민자와 한인 2세가 백인보다 교육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 국가에서는 대부분 고학력자들이 미국 이민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민 1세는 언어 장벽 때문에 주로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일반적으로 한인 소유의 업소에서 일하면서 생활해 왔다. 이러한 이민 1세 한인들의 경제활동은 미국사회로의  동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인 2세는 주류 경제에 진출해 전문직이나 경영직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 1세대가 ‘동족 경제’ 위주였다면 2세는 ‘주류 경제’ 위주로 바뀌었다.     통계로 보면 한인 2세의 전문직 종사자 비율은 42%로 미국 출생 백인보다 거의 두 배로 높다. 그러나 한인 2세들이 동족 경제를 떠나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한인 커뮤니티에 대해 애착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자영업을 주로 운영하는 이민 1세는 다른 소수계들과 경쟁하면서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단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한인 2세는 각자 자신의 학력과 전문 지식으로 주류 경제에서 꿇리지 않는 직장을 얻으니 민족 단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주류 사회 진출과 민족 응집력은 서로 상반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떨떠름하기도 하다.     일부 한인들은 자녀들의 교육과 사회 진출에 방해가 될까 봐 민족적 전통을 가르치는 것을 꺼리고 자녀들을 미국식으로 키우려 한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은 영어에만 능숙한 2세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고 모국 문화를 이해하도록 하는데 소홀하다. 이들 자녀들은 이중언어와 이중문화를 습득한 다른 2세들보다 훨씬 정서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아울러 주류 사회 진출의 기회도 오히려 더 적어진다.     우리 이민 1세들은 지금부터라도 자녀들에게 모국어와 민족문화 전통을 제대로 가르쳐야 그들이 학교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고, 더욱 세계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20년 전에는 2세뿐만 아니라 이민 1세들도 모국에 대해, 특히 정치 상황을 창피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 한국이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지금은 모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동시에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것이, 지금 우리 1세들의 의무임을 알아야 한다.     이민 1세대와 1.5세대들은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작건 크건 감투싸움에 혈안이 되어 서로 쌈박질 하는 이민 사회가 되지 말고, 우리 아이와 손주들에게 ‘한국인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리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손용상 / 소설가·한솔문학 대표열린 광장 정체성 교육 미주 한인사회 한인 2세들 교육과 사회

2022-02-27

[문화 산책] 전업작가 부재의 한인사회

 “자투리 토막글 이제 그만 쓰고, 오래 남을 굵직한 작품 좀 쓰세요!”   존경하는 선배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드릴 말씀이 없고 죄송해서 고개만 푹 숙이고 한동안 벌을 섰다.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쓴 희곡이 극단에서 공연되면서 극작가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 1971년이니까, 올해로 글쟁이 50년인데 자신 있게 내놓을 글이 없다는 건 매우 부끄럽고 서글픈 일이다.   되돌아보니 나는 그동안 허름한 ‘문화잡화상’을 열고 ‘생계형 글쟁이’로 살아왔다. 글을 써서 지금까지 먹고 살았고, 가정을 건사하고 아이들을 키운 셈이다. 광고문안, 신문·잡지 기사, 칼럼부터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 공연대본, 미술책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써서 여기저기에 부지런히 발표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세상에 내놓은 글들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형편 되는 대로 책으로 발간하다 보니 이런저런 책을 25권 넘게 펴내게 되었고, 50편의 희곡을 공연하거나 연극잡지에 발표했다.   늘 원고마감에 쫓기느라 오래 남을 묵직한 작품을 쓸 뭉텅이 시간을 가질 겨를은 아예 없는 신세였다. 그러다 보니 딱히 내세워 자랑할 만한 책도 없고 대단한 화제작도 못 낸 허름한 글쟁이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런 것이 다 구차스러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결국은 내가 큰 글을 쓸 능력이 없고, 철저한 작가정신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크고 웅장한 작품을 쓰는 동료문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멋진 작품을 쓰겠다는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좀 늦은 것 같다. 그나마 지금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하늘이 주신 복이려니 여겨 허리 꺾어 절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미주 한인사회의 거의 모든 예술가들이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이른바 ‘전업작가’는 정말 몇 명 안 된다.   예술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으니, 글쟁이가 햄버거를 굽고, 화가가 마켓을 지키고, 음악가가 페인트칠을 하고, 연극인이 목수를 하고, 미술평론가가 남의 집 잔디 깎으러 다니고… 그러면서 작품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출산, 육아, 가사를 책임져야 하고, 돈벌이까지 해야 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경우는 한층 더 열악하다. 결혼을 하면 ‘경력 단절’을 피할 길이 없다.   이 사람들이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 서글퍼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물론 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스승 김희창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어느 사람 자체가 예술일 때, 그 사람의 생활 자체가 예술일 때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은 만들어 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해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서 우러나야 하는데, 그 위에 정신과 생활(먹고 사는 데)에 여유가 있어야 하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미주 한인사회에도 이건희 회장 같은 안목 높은 후원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르네상스 시대의 후원자 같은 화끈한 존재면 더 고맙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도 돈을 엄청 많이 번 진짜 부자가 적지 않다는데 길게 보면 부동산 투자보다 제대로 된 사람에게 투자하는 편이 훨씬 현명할 텐데….     하도 답답해서 해본 생계형 글쟁이의 푸념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전업작가 한인사회 전업작가 부재 미주 한인사회 문학작품 공연대본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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